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긍정의 힘

등록일 : 2019-06-22

 

김혜진씨는 2012년부터 건강보험공단에서 공직 약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고가의 항암제, 난치성 질병을 위한 치료제 등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위해 제약회사와 협상해 약가를 정하는 것이 업무입니다. 매일 출근해 전화 상담과 업무 미팅을 하고, 종종 지역에 있는 본사로 출장을 다녀오지만 휠체어를 탄 혜진씨가 할 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 타고난 긍정주의자인 그녀가 세상의 장애물을 씩씩하게 헤쳐 나가듯, 장애인의 이동권 증진을 위해 우리가 넘어야 할 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휠체어를 사용해 왔는데요, 토도드라이브를 사용하면서 어떤 변화를 경험하고 계신가요?

 

어린 시절에는 혼자 가게나 문구점조차 갈 수 없는게 너무 아쉬웠어요. 지금도 마트에 가면 과자코너를 떠나지 못할 만큼 한이 되었죠(웃음). 직장인이 된 후 전동휠체어는 너무 무거워 평상시 사용이 어렵고, 비오는 날 수동휠체어로 출근을 하다 보면 두 손이 자유롭지 못해 5분 거리도 우산 대신 우비를 입어야 나갈 수 있었습니다. 토도드라이브(전동키트)를 쓰기 시작한 후에는 정말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무엇보다 전에는 친구들을 만나면 한 명은 늘 운동화를 신고 나오곤 했어요.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야 하니까요. 한참 멋낼 나이에 구두도 못 신고, 저로서는 미안한 마음이었죠. 그런데 이젠 구두를 신은 친구와 나란히 걷고 손도 잡고, 함께 눈을 마주칠 수도 있어요. 비로소 함께 걷는다는 생각이 든다며 저보다 친구가 더 좋아하더군요.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시선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들의 시선에도 색깔이 있다면 무색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장애인은 비장애인 한 두 명을 보고 판단하지 않는데, 장애인 한 두 명을 보고는 ‘장애인은 다 저래’라고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해요. 장애인 한 명 한 명을 하나의 사람으로 봐주시고 다양성을 인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서로 어떤 노력과 배려가 필요할까?

 

장애인들께는 ‘말하지 않아도 내 입장을 이해하겠지’ 소극적인 태도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말해야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니 부끄러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얘기해야 한다고요. 그래야 비로소 상대방이 오해 없는 진짜 이해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또, 배려나 이해가 당연한 사회이지만, 그런 친절에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삶이 더 풍성해지더라구요. 비장애인분들 역시 소통없이 자체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직접 물어봐 주시면 좋을것 같아요. ‘업무를 수행하는데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려줄래요?’라는 소소한 질문 하나로도 장애인 동료에겐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기업이나 조직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장애 유무를 떠나 ‘일’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에 변화가 생겼으면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내가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고 있어요. 스웨덴의 경우에는 장애인 뿐 아니라 임산부나 맞벌이 부모 등 어떤 이유로든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업무시간을 선택가능하다고 들었어요. 그런 정책이나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자리잡았으면 좋겠어요. 아픈 것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 동안 능력을 발휘해 충분히 일하는 것에 당당해지기를 바랍니다.

 

 

장애를 가진 학생이나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장애가 이유가 될 수는 있지만 핑계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이들은 편견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장애인들은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할까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내가 신체적으로 힘든 만큼, 각자 저마다의 힘든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모두가 어려움이 있지만, 모두가 불행한 건 아니잖아요. 장애로 인한 슬픔이나 어려움을 너무 크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상처를 인정하고, 지지할수록 사회에 나가는데 두려움이 적어지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소망이나 꿈이 있나요?

 

후회 없이 죽는 거요.(웃음) 죽는 순간 미처 먹어 보지 못한 맛있는 음식이나 사지 못한 명품백이 생각나지는 않겠죠. 하지만 소중한 사람에게 했던 모진 말이나 망설임과 게으름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기회들은 생각나지 않을까요. 그런 것들을 줄이는 삶을 살고 싶어요. 잘 할 수 있는 일이건 아니건, 해보고 싶은 일은 일단 도전해보고 안되면 포기해야죠. 올 여름에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현지에 친구가 있긴 하지만 혼자 휠체어를 타고 갈 예정이에요.